어휘 학습 팁

영어 단어장 만드는 법: 양식보다 중요한 건 무엇을 뺄지 정하는 일

Vocaby Team 6 분 분량
발음기호가 함께 표시된 보캐비 단어 카드, 표제어 retain

영어 단어장이 실패하는 이유는 칸을 몇 개로 나눴는지, 손글씨인지 엑셀인지에 있지 않습니다. 모르는 단어를 전부 집어넣기 때문입니다. 단어장은 모은 만큼 쌓이는 게 아니라, 걸러낸 만큼 남습니다. 무엇을 넣을지보다 무엇을 뺄지가 먼저입니다.

양식을 아무리 예쁘게 짜도 안 되는 이유

단어장 만드는 법을 찾아보면 대부분 양식 이야기입니다. 단어, 뜻, 예문, 유의어를 몇 칸으로 나눌지. 그런데 세 달 뒤에 그 단어장을 다시 여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양식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목록이 너무 길어져서입니다.

한 페이지에 스무 개씩 적으면 열 페이지만 넘어가도 이백 개입니다. 이백 개를 한 번 훑는 데 이십 분이 걸리고, 그 이십 분이 부담스러워지는 순간 단어장은 서랍으로 들어갑니다. 문제는 게으름이 아니라 분량입니다.

넣을 단어를 고르는 세 가지 기준

모르는 단어라고 다 적을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걸리면 남기고, 아니면 그냥 넘깁니다.

  • 또 만날 것 같은가. 뉴스나 시험 지문에서 두 번 이상 본 단어는 세 번째도 옵니다. 소설에 한 번 나온 고어체 단어는 안 옵니다.
  • 뜻은 아는데 못 쓰는 단어인가. 읽으면 알겠는데 막상 내가 쓸 때는 안 떠오르는 단어야말로 적어 둘 값어치가 있습니다. 처음 보는 단어보다 이쪽이 점수로 이어집니다.
  • 비슷한 단어와 헷갈리는가. affect와 effect, adapt와 adopt처럼 짝으로 헷갈리는 단어는 따로 적어 두면 그 자리에서 정리됩니다.

세 기준을 다 통과하지 못한 단어는 지금 내 단어가 아닙니다. 나중에 필요해지면 또 만나게 되고, 그때 적으면 됩니다.

실제로 해 보면 생각보다 많이 걸러집니다. 어제 읽은 기사 한 편에서 모르는 단어가 여덟 개 나왔다고 해 봅시다. 그중 넷은 그 기사의 주제어라 다른 데서는 안 나올 말이고, 하나는 고유명사에 가까운 전문 용어입니다. 남는 건 셋입니다. 여덟 개를 다 적었다면 내일 여덟 개를 복습해야 하고, 그중 다섯 개는 다시 볼 일이 없는 단어에 쓰는 시간입니다. 셋만 적으면 내일 삼 분이면 끝납니다.

이 계산이 쌓이면 차이가 큽니다. 하루 여덟 개는 한 달이면 이백사십 개고, 하루 셋은 구십 개입니다. 구십 개는 다시 볼 수 있는 양이고 이백사십 개는 아닙니다.

한 칸에 무엇을 적을 것인가

적는 항목이 많을수록 좋은 단어장이 되지는 않습니다. 항목이 늘면 한 단어를 적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오래 걸리면 안 적게 됩니다.

항목넣기이유
단어필수당연히
품사필수명사인지 동사인지에 따라 쓰는 자리가 달라집니다
한국어 뜻한 줄만사전에 있는 뜻을 다 옮기면 하나도 안 남습니다
예문필수뜻보다 예문이 기억에 붙습니다
발음필수아래에 따로 설명하겠습니다
유의어생략헷갈리는 짝이 아니라면 나중에
어원선택재미있을 때만. 의무가 되면 안 적게 됩니다

예문은 사전에서 그대로 베끼기보다 내가 그 단어를 만난 문장을 적는 편이 낫습니다. 어디서 봤는지가 같이 기억나기 때문입니다.

한국어 뜻만 적으면 생기는 일

가장 흔한 실수입니다. meticulous — 꼼꼼한이라고 적어 두면 시험장에서 ‘꼼꼼한’은 떠오르는데 그 단어를 어디에 쓰는지는 모릅니다. meticulous는 사람의 성격이나 작업 방식에 붙지, 꼼꼼하게 접힌 종이에는 쓰지 않습니다. 한국어 뜻 한 줄은 그 차이를 담지 못합니다.

그래서 뜻 옆에는 반드시 예문이 붙어야 합니다. 이 부분은 한국어 뜻으로 외우는 것과 영어 정의로 외우는 것의 차이에서 더 자세히 다뤘습니다.

발음은 단어장에 잘 안 적힙니다

손으로 만든 단어장의 가장 큰 구멍입니다. 뜻과 예문은 적으면서 발음은 거의 안 적습니다. 발음기호를 쓸 줄 모르기도 하고, 안다고 생각하기도 하니까요.

문제는 시험이 아니라 그 다음입니다. 눈으로만 외운 단어는 리스닝에서 안 들리고 입에서도 안 나옵니다. determine을 ‘데터민’처럼 기억하고 있으면 원어민이 말하는 determine을 놓칩니다. 철자를 알아도 소리를 모르면 절반만 아는 셈입니다.

한국어를 쓰는 사람에게는 함정이 하나 더 있습니다. 한국어는 자음 뒤에 모음이 따라오는 구조라 영어 단어를 한글로 옮기면 음절이 늘어납니다. strength는 영어로 한 음절인데 ‘스트렝스’는 네 음절입니다. 머릿속에서 네 음절로 저장해 두면 원어민이 한 음절로 지나가는 그 단어를 잡아낼 수가 없습니다. 리스닝이 안 되는 이유가 어휘 부족이 아니라 이 저장 방식일 때가 꽤 있습니다.

  • 발음기호를 적을 수 있으면 적으세요. 못 적겠으면 최소한 강세 위치라도 표시하세요.
  • 소리 내어 한 번 읽고 적으세요. 눈으로만 적으면 소리는 남지 않습니다.
  • 한글로 발음을 적는 습관은 되도록 버리세요. 적는 순간 음절 수가 틀어집니다.

복습 날짜는 손으로 못 짭니다

단어장을 만들어 본 사람은 다 압니다. 문제는 만드는 게 아니라 다시 보는 겁니다.

단어마다 잊는 속도가 다릅니다. 어떤 단어는 두 번 보면 붙고, 어떤 단어는 여섯 번을 봐도 다음 주에 사라집니다. 종이 단어장은 이걸 구분하지 못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이 훑게 되고, 이미 외운 단어에 시간을 쓰게 됩니다.

간격 반복은 이 문제를 풀려고 만들어진 방식입니다. 잊기 직전에 한 번씩 꺼내 주는 것이고, 원리는 간격 반복 학습 정리에 따로 설명해 두었습니다.

손으로 흉내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잠깐 계산해 보면 왜 안 되는지가 보입니다. 단어 하나를 오늘 외웠으면 내일, 사흘 뒤, 일주일 뒤, 이 주 뒤에 다시 봐야 합니다. 단어가 백 개면 날짜가 사백 개 생기고, 매일 아침 오늘 날짜에 걸린 단어를 골라내야 합니다. 게다가 어제 틀린 단어는 일정을 다시 당겨야 하니 계산이 매일 바뀝니다. 이걸 종이로 하려면 단어를 외우는 시간보다 일정을 관리하는 시간이 길어집니다.

그래서 예전부터 상자에 칸을 나눠 카드를 옮기는 방식을 썼습니다. 원리는 같지만 칸이 다섯 개뿐이라 단어마다 다른 속도를 반영하지는 못합니다. 지금 쓰는 알고리즘은 단어별로 따로 계산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그래도 손으로 만드는 게 나은 경우

앱이 항상 낫다는 말은 아닙니다. 두 가지는 손이 확실히 낫습니다.

첫째, 고르는 단계입니다. 이 단어를 남길지 말지 판단하는 삼 초가 그 단어를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듭니다. 자동으로 담기는 단어는 그 삼 초가 없습니다.

둘째, 시험 직전입니다. 시험 사흘 전에는 새 단어를 넣을 때가 아니라 이미 아는 단어를 확인할 때입니다. 이때는 종이 한 장에 헷갈리는 단어만 스무 개 적어서 들고 다니는 쪽이 어떤 앱보다 빠릅니다. 화면을 켜고 앱을 열고 덱을 고르는 삼십 초가,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는 이 초보다 깁니다.

셋째, 한 분야를 파고들 때입니다. 논문을 읽거나 특정 업계 자료를 번역하는 중이라면 그 분야에서만 쓰는 표현이 계속 나옵니다. 이건 어떤 덱에도 안 들어 있는 목록이라 직접 만드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럴 때는 단어보다 통째로 쓰이는 구를 적어 두는 편이 낫습니다. 단어 하나만 알아서는 그 자리에 못 넣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면 사람이 잘하는 건 판단이고, 도구가 잘하는 건 반복입니다. 둘을 바꿔서 맡기면 양쪽 다 잘 안 됩니다.

처음 설정에 삼십 분만 쓰세요

정리하면 순서는 이렇습니다.

  1. 거를 기준을 먼저 정합니다. 위의 세 가지 중 무엇을 쓸지 결정하고 적어 두세요.
  2. 항목을 다섯 개로 제한합니다. 단어, 품사, 뜻 한 줄, 예문, 발음. 더 늘리지 않습니다.
  3. 하루 상한을 정합니다. 다섯 개든 여덟 개든, 넘치면 다음 날로 넘깁니다.
  4. 복습은 도구에 맡깁니다. 날짜 계산은 사람이 할 일이 아닙니다.

보캐비를 만들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 네 번째입니다. 29,000개가 넘는 단어에 발음기호와 오디오가 붙어 있어서 소리를 따로 찾을 필요가 없고, FSRS 간격 반복이 단어마다 다음에 보여 줄 시점을 따로 계산합니다. 주제별로 묶인 덱이 이미 들어 있어서 처음부터 목록을 만들 필요도 없습니다. 단어를 넘기면서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가르는 방식이라, 고르는 감각은 그대로 쓰면서 날짜 계산만 넘기는 셈입니다. 단어별 페이지는 보캐비 단어 목록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정리

좋은 단어장은 두꺼운 단어장이 아닙니다. 다시 펼치게 되는 단어장입니다. 그러려면 짧아야 하고, 짧으려면 골라야 합니다. 무엇을 적을지 고민하기 전에 무엇을 적지 않을지부터 정하세요.

고르는 일은 직접 하시고, 언제 다시 볼지는 넘기세요. App Store에서 보캐비 받기

자주 묻는 질문

단어장은 손으로 쓰는 게 좋나요, 앱이 좋나요?
고르고 적는 단계는 손으로 하는 편이 낫습니다. 어떤 단어를 남길지 판단하는 과정 자체가 기억에 남기 때문입니다. 반면 언제 다시 볼지를 정하는 일은 손으로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단어마다 잊는 속도가 다른데 종이는 그걸 기억해 주지 않습니다. 선별은 사람이, 복습 일정은 도구가 맡는 조합이 가장 오래갑니다.
하루에 단어장에 몇 개나 넣는 게 적당한가요?
개수보다 기준이 먼저입니다. 오늘 읽은 글에서 모르는 단어가 서른 개 나왔다면 그중 다시 만날 것 같은 단어만 남기세요. 대여섯 개면 충분합니다. 서른 개를 다 적으면 다음 날 서른 개를 복습해야 하고, 그 부담이 이틀이면 단어장을 덮게 만듭니다.
이미 만들어 둔 단어장이 너무 길어졌는데 어떻게 하나요?
처음부터 다시 만들지 말고 한 번 걸러내세요. 지난 한 달 동안 실제로 다시 마주친 적이 없는 단어, 뜻을 봐도 어디에 쓰는지 모르겠는 단어는 지워도 됩니다. 목록이 짧아지면 복습이 다시 굴러갑니다. 지운 단어가 정말 필요하면 어차피 또 만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