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철자가 엉망으로 보이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영어의 어휘는 한 언어에서 온 것이 아니라 여러 언어가 층으로 쌓인 것입니다. 프랑스어, 그리스어, 라틴어, 아랍어, 일본어에서 들어온 단어들은 저마다 원래 모양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고, 그 모양이 대개 발음을 알려 줍니다. 규칙이 없는 게 아니라 규칙이 여러 개인 것입니다.
영어 철자가 말을 안 듣는 이유
단어를 빌려 오는 대부분의 언어는 자기 소리에 맞게 모서리를 깎습니다. 영어는 그러지 않는 편입니다. 외국어 철자를 거의 그대로 두고, 소리만 적당히 영어식으로 바꾸고, 그대로 씁니다. 그래서 같은 철자 조합이 어느 세기에 어느 나라에서 들어왔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일을 하게 됩니다.
여러 조사에 따르면 영어 사전에 실린 단어 중에는 고대 영어보다 프랑스어와 라틴어에서 온 것이 더 많습니다. 게르만어 계통 언어치고는 이상한 사실이고, 학습자가 영어 발음을 제멋대로라고 느끼는 이유를 가장 잘 설명해 줍니다. 제멋대로가 아니라 층층이 쌓여 있고, 층마다 억양이 다른 것입니다.
프랑스어 계열, 끝을 읽지 않는 단어들
1066년 이후 잉글랜드의 지배층은 몇 세대 동안 프랑스어를 썼고, 그때 넘어온 어휘는 지금도 법률, 요리, 행정, 패션의 어휘로 남아 있습니다. 이 무리에는 끝 자음을 아무도 발음하지 않는 단어가 특히 많습니다.
- ballet — /bæˈleɪ/, t 묵음
- buffet — /bəˈfeɪ/, t 묵음
- gourmet — /ɡʊrˈmeɪ/, t 묵음
- debut — /deɪˈbjuː/, t 묵음
- rendezvous — /ˈrɑːndeɪvuː/, s 묵음
- entrepreneur — /ˌɑːntrəprəˈnɜːr/, 프랑스어에서는 첫 음절이 비음이지만 영어에서는 아닙니다
여기서 신호는 두 개입니다. 쓰인 끝소리를 읽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강세가 뒤쪽에 온다는 것. 강세가 뒤에 오는 건 영어에서 드문 일이라, 이 단어들이 유독 입에 잘 안 붙는 이유가 됩니다. 요리나 무용, 예술, 사치와 관련된 단어가 -et, -ot, -eau, -ez로 끝나면 프랑스어 계열이고 끝이 묵음이라고 찍어도 대체로 맞습니다.
함정은 너무 일찍 들어와서 완전히 영어가 되어 버린 단어들입니다. carrot이나 parrot을 프랑스어식으로 읽는 사람은 없습니다. 영어에 있은 지 오래돼서 영어 단어로 취급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최근에 들어온 단어일수록 외국어 발음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스어 계열은 첫 글자를 숨깁니다
그리스어는 주로 학문을 통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의학, 과학, 철학 쪽에 몰려 있습니다. 그리스어가 남긴 철자 신호는 세 가지이고, 각각이 수십 개 단어를 한꺼번에 설명해 주기 때문에 외워 둘 값어치가 있습니다.
첫째, ch를 k로 읽습니다. chaos는 /ˈkeɪɑːs/, character는 /ˈkerɪktər/이고 chorus, architect, echo, anchor, scheme도 같습니다. 학술적으로 생긴 단어에 ch가 있으면 k 소리 쪽에 거는 게 안전합니다.
둘째, ps-, pn-, pt-, mn- 같은 자음군에서 첫 자음이 묵음이 됩니다. psychology는 /saɪˈkɑːlədʒi/, pneumonia는 /nuːˈmoʊniə/, mnemonic은 /nɪˈmɑːnɪk/입니다. 기억술을 뜻하는 단어가 정작 읽기 어렵다는 게 작은 농담처럼 느껴집니다. 영어는 단어 첫머리에 그런 자음군을 허용하지 않아서, 철자는 그대로 두고 소리만 조용해집니다.
셋째, 정해진 어미가 있습니다. -phy, -logy, -graph, -meter, -itis 같은 것들입니다. 이건 어미라기보다 조립용 부품에 가까워서, 그리스어 어근을 몇 개만 알아 두면 처음 보는 단어도 뜯어볼 수 있습니다. 외래어 목록을 외우는 것보다 이쪽이 훨씬 남습니다.
라틴어 계열은 강세가 움직입니다
라틴어는 두 번 들어왔습니다. 한 번은 프랑스어를 거쳐서, 한 번은 학술 문헌을 통해 직접. 그래서 어디에나 있고 행동도 예측 가능합니다. 표시는 어근에 -tion, -ity, -ous, -ate, -ment 같은 낯익은 어미가 붙은 긴 단어입니다.
라틴어 계열이 어려운 건 소리 자체가 아닙니다. 접미사가 붙을 때 강세가 옮겨 가고 모음까지 따라 바뀐다는 점입니다.
| 기본형 | 파생형 | 강세 위치 |
|---|---|---|
| PHOtograph | phoTOGraphy | 둘째 음절 |
| ECOnomy | ecoNOMic | 셋째 음절 |
| POlitics | poLItical | 둘째 음절 |
| ANalyse | aNALysis | 둘째 음절 |
기본형만 외운 학습자는 듣기 시험에서 파생형에 걸려 넘어집니다. 외운 단어와 들리는 단어가 다른 소리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단어를 하나씩이 아니라 가족 단위로 익히는 편이 나은 이유이고, 읽기만 하지 말고 각각을 직접 들어 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 밖의 언어들, 그리고 영어가 남겨 둔 것
나머지 차용은 좀 더 흩어져 있고 대체로 구체적입니다. 물건, 음식, 날씨, 악기처럼 실물과 함께 들어온 단어들입니다.
- 아랍어에서 algebra, alcohol, algorithm, alchemy, cotton, sugar가 왔습니다. 여럿은 스페인어나 라틴어를 거쳤고, 앞의 네 단어에 붙은 al-은 아랍어 정관사가 단어에 붙어 굳은 것입니다. 지금은 떼어낼 수 있는 조각으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 독일어에서 kindergarten, angst, doppelgänger, rucksack, wanderlust, delicatessen이 왔습니다. 합성어 구조와 철자는 그대로 두고 모음만 영어 입에 맞게 눌러 놓았습니다.
- 일본어에서 tsunami, karaoke, futon, emoji, tycoon이 왔습니다. karaoke는 소리가 가장 많이 변한 사례로, 영어권에서는 보통 /ˌkeriˈoʊki/처럼 발음합니다.
- 힌디어와 우르두어에서 shampoo, jungle, bungalow, pyjamas, loot가 왔고 대부분 영국의 인도 지배 시기를 거쳤습니다.
- 이탈리아어는 음악 어휘를 거의 통째로 넘겨줬습니다. piano, opera, soprano, tempo, allegro, concerto, solo가 이탈리아어이고 balcony, umbrella, studio, volcano도 그렇습니다. 모음이 살아 있는 편이라 한국어 화자에게는 가장 발음하기 쉬운 축에 듭니다.
- 네덜란드어는 조용한 쪽입니다. yacht, cookie, landscape, skipper, easel, iceberg가 뱃사람과 화가와 상인을 따라 북해를 건너왔는데 알아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yacht만 예외적으로 외국 철자를 크게 남겼습니다. /jɑːt/로 읽고 ch는 묵음인데, 이건 네덜란드어 사정이지 영어 규칙으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영어가 번역한 게 얼마나 적은지 보십시오. 다른 언어였다면 tsunami에 해당하는 말을 자기 말로 만들었을 겁니다. 영어는 단어를 철자째 가져오고 발음은 알아서 되게 뒀습니다.
한눈에 보는 표
| 출신 | 철자 신호 | 소리에 생기는 일 | 예 |
|---|---|---|---|
| 프랑스어 | -et, -ot, -eau, -ez | 끝 자음 묵음, 강세가 뒤로 | ballet /bæˈleɪ/ |
| 그리스어 | ch, ps-, pn-, mn- | ch는 k, 첫 글자는 묵음 | chaos /ˈkeɪɑːs/ |
| 라틴어 | -tion, -ity, -ous, -ate | 접미사가 붙으면 강세 이동 | phoTOGraphy |
| 아랍어 | 앞의 al- | 정관사가 붙어 굳음 | algebra |
| 독일어 | 합성어, sch- | 철자 유지, 모음은 영어식 | kindergarten |
| 일본어 | 열린 음절, 자음군 적음 | 영어식 강세가 새로 붙음 | karaoke |
법칙이 아니라 첫 추측용으로 쓰세요. 영어는 천 년 동안 예외를 만들 시간이 있었고 그 시간을 알뜰히 썼습니다.
같은 뜻인데 단어가 두 개인 이유
이 모든 차용에는 발음보다 글쓰기에 더 중요한 부작용이 하나 있습니다. 영어에는 소박한 앵글로색슨 계열 단어와 거의 같은 뜻의 프랑스어·라틴어 계열 단어가 짝을 이루어 남은 경우가 많고, 이 짝은 뜻이 아니라 격식으로 갈립니다.
ask와 inquire, help와 assist, buy와 purchase, end와 terminate, freedom과 liberty. 각 짝에서 토박이말 쪽이 일상어이고 차용어 쪽이 격식체입니다. 라틴어 계열 단어로만 채운 문단이 딱딱하고 관공서 문서처럼 읽히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어느 쪽을 집느냐가 사실상 말투를 결정합니다.
가장 선명한 예는 식탁에 있습니다. 살아 있는 동물은 영어 이름을 지켰고 고기는 프랑스어 이름을 받았습니다. cow와 beef, pig와 pork, sheep과 mutton, calf와 veal, deer와 venison. 영어를 쓰는 농민이 동물을 키우고 프랑스어를 쓰는 집에서 그 고기를 먹었다는 설명이 흔히 따라붙습니다. 실제 역사가 그렇게 깔끔했을 리는 없지만, 갈라진 결과 자체는 분명하고 지금 영어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외래어를 실제로 익히는 순서
출신 언어는 갈고리이지 커리큘럼이 아닙니다. 순서는 이렇습니다.
- 한 번만 패턴을 알아차리세요. gourmet이 프랑스어이고 t가 묵음이라는 걸 확인하는 데 2초면 충분하고, 그 2초가 단어를 기억에 걸어 둡니다.
- 어떻게 읽을지 정하기 전에 먼저 들으세요. 외래어는 읽기만 하는 공부가 가장 크게 실패하는 영역입니다. 철자가 내가 모르는 언어의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 소리와 철자가 어긋나면 발음기호를 보세요. mnemonic이나 rendezvous 같은 단어는 짐작으로 평생 안 풀리지만 발음기호 한 줄이면 끝납니다.
- 몰아서 말고 일정에 맞춰 복습하세요. 발음은 조용히 흐려집니다. 잃어버린 걸 남 앞에서 소리 내어 말할 때에야 알아차리게 됩니다.
마지막 단계를 대부분 건너뜁니다. 보캐비는 이 부분을 FSRS 간격 반복으로 처리합니다. 정해진 날짜가 아니라 잊기 직전 시점에 맞춰 단어를 다시 꺼내 주고, 29,000개 이상의 모든 단어에 발음기호와 오디오가 붙어 있어서 소리를 철자에서 유추할 필요가 없습니다. 같은 항목들은 보캐비 단어 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쓰고도 읽지 않는 글자 문제만 따로 보고 싶다면 영어 묵음 글자 정리에 더 자세히 있고, 눈이 아니라 입이 문제라면 영어 발음 향상법부터 보시면 됩니다.
정리
영어는 철자 체계를 만들어 놓고 스스로 깨뜨린 게 아닙니다. 여러 체계를 흡수한 뒤 전부 동시에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ballet은 프랑스어, chaos는 그리스어, algebra는 아랍어이고 각각은 자기 전통대로 적혀 있을 뿐입니다. 규칙 하나를 기대하지 않고 흔적을 읽기 시작하면 단어가 더 이상 싸움을 걸지 않습니다.
소리를 붙여서 익히세요. App Store에서 보캐비 받기로 배우는 동안 모든 단어를 직접 들을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 영어에는 왜 이렇게 외래어가 많나요?
- 정복, 학문, 교역 순서로 들어왔습니다. 1066년 노르만 정복 이후 몇 세대 동안 지배층이 프랑스어를 썼고, 그 뒤에는 학자들이 라틴어와 그리스어에서 전문 용어를 그대로 끌어왔습니다. 이후 세계 각지와의 접촉으로 shampoo부터 karaoke까지 들어왔습니다. 영어는 외래어를 자국어로 바꾸기보다 그냥 받아들이는 편입니다.
- 단어의 출신 언어를 알면 발음에 도움이 되나요?
- 대체로 도움이 되지만 법칙이 아니라 요령입니다. ballet과 buffet이 프랑스어에서 왔다는 것을 알면 끝의 t가 묵음이고 강세가 뒤에 온다는 것이 보입니다. chaos와 character가 그리스어 계통이면 ch를 k로 읽습니다. 다만 모든 단어를 해결해 주지는 않으니 애매하면 발음기호를 확인하세요.
- 외래어만 따로 목록으로 외워야 하나요?
-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평범한 단어로 익히되 출신 언어는 기억을 붙잡아 주는 힌트로만 쓰세요. 처음 만났을 때 패턴을 한 번 알아차리고, 그다음은 간격 반복에 맡기는 편이 낫습니다. 보캐비는 29,000개 이상의 모든 단어에 발음기호와 오디오를 함께 두고 있어서 소리는 항상 한 번의 탭으로 확인됩니다.
이어서 읽기
혼동하기 쉬운 영어 단어: affect·effect부터 헷갈리는 짝 구분법
affect일까 effect일까? their, there, they're는? 영어에는 비슷해 보이거나 똑같이 들리는데 뜻은 다른 단어 짝이 많습니다. 가장 자주 틀리는 것들을 짧은 기억 요령과 함께 정리했습니다.
묵음이 있는 영어 단어 (제대로 발음하는 법)
묵음은 쓰기는 하지만 소리 내지 않는 글자입니다. doubt의 b, knife의 k처럼요. 영어에 묵음이 왜 이렇게 많은지, 알아둘 만한 패턴, 그리고 이런 단어의 진짜 소리를 익히는 확실한 방법까지 정리했습니다.
딱 한 구절에만 살아남은 영어 단어들
혼자서는 아무 데도 못 쓰는데 특정 표현 안에서는 멀쩡히 살아 있는 영어 단어가 있습니다. kith, shrift, fro, bated. 어디서 왔는지, 왜 사전을 찾아도 소용이 없는지, 그리고 이런 단어를 어떻게 외워야 하는지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