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준비

토익·수능 단어장을 DAY 순서대로 외우면 생기는 일

Vocaby Team 6 분 분량
따뜻한 종이 배경 위에 놓인 세리프 표제어와 IPA, 보캐비 카드 스타일

단어장이 알파벳 순으로 묶인 건 학습 효율 때문이 아니라 편집과 색인 편의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 배열이 형태가 닮은 단어들을 같은 페이지, 같은 DAY에 몰아 준다는 점입니다. adapt, adept, adopt를 처음부터 나란히 보면 셋을 가르는 기억이 아니라 뭉개진 기억 하나가 남습니다.

단어장이 알파벳 순인 이유는 학습이 아니라 편집입니다

사전은 찾아보는 물건이라 알파벳 순이어야 합니다. 찾을 단어를 이미 알고 펼치니까요. 단어장은 반대입니다. 모르는 단어를 순서대로 통과하는 물건인데, 사전의 배열을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시중 단어장이 이 구조를 쓰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만들기 쉽고, 개정하기 쉽고, 학습자가 나중에 특정 단어를 되찾기 쉽거든요. 전부 제작자와 편집자 쪽 편의고, 외우는 사람 쪽 편의는 이 목록에 없습니다. 나쁜 의도라는 얘기가 아니라, 애초에 그 기준으로 만들어진 물건이라는 뜻입니다.

빈출순이나 주제별로 짠 단어장은 어떨까요. 알파벳 배열의 함정은 확실히 피합니다. 다만 문제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종류가 바뀝니다.

주제별 단어장은 ‘환경’, ‘경제’, ‘의료’ 같은 묶음 안에 뜻이 가까운 단어를 몰아넣습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형태가 아니라 의미가 겹칩니다. 토익 단어장의 ‘계약’ 파트에 agreement, contract, arrangement, settlement이 나란히 앉아 있는 식이죠. 앞의 배열이 생김새로 헷갈리게 만들었다면 이쪽은 쓰임으로 헷갈리게 만듭니다.

그러니 배열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어떤 순서든 비슷한 것끼리 모으는 순간 간섭이 생기고, 종이 책은 순서를 하나밖에 가질 수 없습니다.

같은 날 페이지에 올라오는 단어들의 공통점

알파벳 순서는 앞글자가 같은 단어를 붙여 놓습니다. 그런데 학습자가 실제로 헷갈리는 짝이 정확히 그런 단어들입니다.

  • adapt(맞추다) · adept(능숙한) · adopt(채택하다) — 앞 세 글자가 같고, 셋 다 DAY 한 곳에 들어갑니다
  • imminent(임박한) · immanent(내재하는) — imm-까지 같습니다
  • ingenious(기발한) · ingenuous(순진한) — 뒤에서 두 글자만 다릅니다
  • discreet(신중한) · discrete(별개의) — 철자 순서만 바뀝니다
  • complement(보완물) · compliment(칭찬) — 가운데 한 글자 차이입니다
  • censure(견책하다) · censor(검열하다) — 붙어 있습니다

괄호 안의 뜻을 읽어 보면 짝마다 의미가 전혀 안 겹친다는 게 보입니다. 칭찬과 보완물은 남남이고, 임박한 것과 내재하는 것도 남남입니다. 그런데도 뒤집힙니다.

우연이 아닙니다. 앞글자가 같으면 알파벳 순서상 붙고, 앞글자가 같으면 사람 눈에도 닮아 보입니다. 단어장은 이 두 성질이 같은 원인에서 나온다는 걸 모른 채 배열만 따라갑니다.

형태 간섭은 의미 간섭과 다릅니다

비슷한 뜻의 단어를 한꺼번에 외우면 서로 방해한다는 이야기는 꽤 알려져 있습니다. 이건 뜻이 겹쳐서 생기는 간섭이고, 동의어를 묶어서 외우면 생기는 일에 따로 정리해 뒀습니다.

지금 이야기하는 건 다른 종류입니다. adapt와 adopt는 뜻이 겹치지 않습니다. 하나는 맞추는 것이고 하나는 들이는 것이라 의미상 헷갈릴 이유가 없어요. 그런데도 시험장에서 뒤집힙니다. 겹치는 게 뜻이 아니라 생김새이기 때문입니다.

머릿속에서 단어를 꺼낼 때는 철자와 소리가 먼저 후보를 불러옵니다. 형태가 닮은 단어들은 이 단계에서 한꺼번에 올라오고, 그중 하나를 고르는 일이 남습니다. 처음 배울 때 셋이 늘 같이 등장했다면 고를 근거가 애초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증상도 다릅니다. 의미 간섭은 “둘 중 뭐가 더 강한 말이었지”로 나타나고, 형태 간섭은 “이게 그거 맞나”로 나타납니다. 후자가 시험에서 더 비쌉니다. 뜻을 반대로 아는 게 아니라 단어 자체를 잘못 짚는 거라서요.

시험장에서 유독 심해지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자주 보는 단어일수록 머릿속에서 빨리 올라오는데, 시간에 쫓기면 가장 먼저 올라온 후보를 그냥 집게 됩니다. adopt는 흔하고 adept는 드뭅니다. 그래서 셋이 뭉쳐 있으면 압박받는 순간 흔한 쪽으로 쏠립니다. 평소 문제집에서는 맞히던 단어가 실전에서만 틀리는 일이 이렇게 생깁니다.

소리가 갈라 주는 짝, 소리로도 안 갈라지는 짝

여기서 갈라집니다. 발음을 알면 해결되는 짝이 있고, 발음까지 같아서 소리로는 손도 못 대는 짝이 있습니다.

발음소리로 갈리나실제 구분 기준
adapt / adopt/əˈdæpt/ vs /əˈdɑpt/갈립니다모음 하나
adept/əˈdɛpt/갈립니다위 둘과 모음이 다름
ingenious / ingenuous/ɪnˈdʒiːniəs/ vs /ɪnˈdʒɛnjuəs/갈립니다강세 뒤 모음
imminent / immanent/ˈɪmɪnənt/ vs /ˈɪmənənt/거의 안 갈립니다문맥
discreet / discrete완전히 같습니다안 갈립니다철자와 쓰임
complement / compliment거의 같습니다안 갈립니다철자와 쓰임

정직하게 말하면 발음은 만능이 아닙니다. discreet와 discrete를 소리로 가르려는 시도는 그냥 시간 낭비입니다. 대신 위쪽 절반은 소리를 한 번 듣는 것만으로 상당 부분 정리됩니다. 눈으로만 외운 사람은 이 절반까지 놓치고 있는 셈이고요.

DAY 단위가 문제를 한 번 더 키웁니다

단어장은 보통 DAY 단위로 잘려 있습니다. 하루치가 30~50개쯤이고, 그날 안에서 여러 번 반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형태가 닮은 단어에게 이건 최악의 조합입니다. 처음 만나는 날에, 짧은 시간 안에, 여러 번 나란히 붙습니다. 그 결과 셋은 서로의 배경이 되고 각자의 자리를 못 얻습니다.

게다가 DAY 순서대로 진도를 빼면 복습도 DAY 단위로 붙습니다. 헷갈리는 짝이 처음 만난 날에도 같이 있었고, 복습하는 날에도 또 같이 있는 겁니다. 떼어 놓을 기회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럼 단어장을 버려야 하나

아닙니다. 단어 선정은 대체로 잘 되어 있습니다. 시험에 나오는 단어를 모아 놓는 일은 단어장이 잘하는 일이고, 개인이 직접 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고쳐야 하는 건 목록이 아니라 순서입니다. 그리고 순서는 공짜로 바꿀 수 있습니다. 책을 새로 사거나 앱을 갈아탈 필요 없이, 펼치는 방식만 바꾸면 됩니다.

순서를 흐트러뜨리는 세 가지 방법

  1. DAY를 통째로 섞으세요. 오늘 DAY 12를 한다면 다음은 DAY 13이 아니라 DAY 27, 그다음은 DAY 5처럼 건너뜁니다. 진도는 똑같이 나가고 인접 페이지의 닮은 단어만 흩어집니다. 해 보면 상당히 찝찝합니다. 순서대로 안 나가면 빠뜨린 것 같고 진도가 눈에 안 보이니까요. 그 찝찝함이 바로 효과가 나는 지점이라는 게 짜증나는 부분입니다.
  2. 닮은 짝을 발견하면 그 자리에서 하나를 미루세요. adapt와 adopt가 같이 나왔다면 오늘은 adapt만 확실히 하고 adopt는 표시해 뒀다가 사나흘 뒤에 시작합니다. 하루치 개수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다음 날로 넘어가는 것뿐입니다.
  3. 한 단어에 상황을 하나씩 붙이세요. 뜻만 외우면 형태가 닮은 것들이 같은 창고에 쌓입니다. adopt는 제도와 아이와 정책 쪽에, adapt는 환경과 각색 쪽에 걸어 두면 꺼낼 때 다른 문이 열립니다.

세 번째가 가장 품이 들고 가장 오래갑니다. 섞기와 몰아하기 중 무엇이 언제 유리한지는 섞어서 외우기와 몰아서 외우기에서 조건까지 따져 뒀습니다.

이미 뭉개진 단어는 어떻게 되살리나

한 가지 예외가 있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단어는 떼어 놓는 게 맞지만, 이미 둘 다 어중간하게 아는 상태라면 반대로 해야 합니다.

이 단계에서는 나란히 놓고 차이를 대놓고 대조하는 편이 빠릅니다. 두 단어를 한 문장씩 나란히 쓰고, 서로 바꿔 넣어 보고, 어디서 문장이 망가지는지 확인하세요.

adapt와 adopt로 해 보면 이렇습니다. “The film was adapted from a novel”에서 adapt를 adopt로 바꾸면 소설을 각색한 게 아니라 소설을 입양한 말이 됩니다. 반대로 “The company adopted a new policy”에서 adopt를 adapt로 바꾸면 정책을 새로 들인 게 아니라 있던 정책을 뜯어고친 뜻이 됩니다. 바꿔 넣었을 때 문장이 조용히 다른 말이 되는 지점, 거기가 두 단어의 경계입니다. 뜻풀이를 다시 읽는 것보다 이 대조가 훨씬 오래 남습니다. 처음에는 붙이면 안 되고 나중에는 붙여야 한다는 게 헷갈리지만, 기준은 하나입니다. 구분할 근거가 아직 없으면 떼고, 근거가 있는데 흐릿하면 붙입니다.

바꿔 넣을 문장이 떠오르지 않는 짝은 아직 뜻만 아는 단어입니다. 그런 단어는 대조가 아니라 예문부터 다시 채워야 합니다.

보캐비는 순서를 어떻게 정하나

보캐비에는 알파벳 순서가 없습니다. 단어는 FSRS라는 간격 반복 알고리즘이 정한 시점에 올라오고, 그 시점은 단어마다 다릅니다. 겨우 아는 단어는 금방 돌아오고 확실한 단어는 뒤로 밀립니다. 결과적으로 형태가 닮은 단어들이 같은 세션에 나란히 설 이유가 사라집니다.

29,000개가 넘는 모든 단어에 발음기호와 원어민 음성이 붙어 있는 것도 이 문제와 직접 닿아 있습니다. 위 표의 절반은 소리 한 번으로 갈리는 짝이니까요. 나머지 절반은 소리로 안 갈리고, 그건 앱도 마찬가지라 예문과 쓰임으로 붙잡아야 합니다.

단어를 미리 훑어보고 싶다면 단어 탐색기에 정의와 발음이 함께 있습니다.

단어장이 나쁜 게 아니라 순서가 편집자의 것일 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게 단어 공부에서 가장 손해가 큰 습관이라고 봅니다. 노력의 양이 아니라 배치 때문에 새는 거라, 열심히 한 사람일수록 더 많이 잃거든요. 그런데 고치는 비용은 오늘 페이지를 몇 장 건너뛰는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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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단어장을 알파벳 순서대로 외우면 안 되나요?
안 된다기보다, 알파벳 순서는 헷갈리는 단어를 한자리에 모아 주는 배열입니다. adapt와 adept와 adopt는 알파벳으로 붙어 있어서 대개 같은 DAY에 처음 만나게 되는데, 형태가 닮은 단어를 처음부터 나란히 보면 둘을 가르는 기억이 아니라 뭉뚱그린 기억이 남습니다. 단어장을 바꿀 필요는 없고 순서만 흐트러뜨리면 됩니다.
헷갈리는 짝은 아예 따로 떼서 외우는 게 좋나요?
처음 익힐 때는 떼는 쪽이 낫습니다. 하나를 확실히 자기 것으로 만든 다음에 다른 하나를 며칠 뒤에 붙이세요. 다만 이미 둘 다 어중간하게 아는 상태라면 그때는 나란히 놓고 차이를 명시적으로 대조하는 편이 빠릅니다. 순서가 반대면 효과도 반대가 됩니다.
발음을 들으면 헷갈리는 단어가 구분되나요?
짝에 따라 다릅니다. adapt와 adept와 adopt, ingenious와 ingenuous는 소리가 서로 달라서 발음을 알면 실제로 갈립니다. 반면 discreet와 discrete는 발음이 완전히 같아서 소리로는 절대 갈리지 않습니다. 이런 짝은 철자와 쓰임으로만 구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