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학습

왜 문법보다 어휘가 먼저인가

Vocaby Team 6 분 분량
lexicon이라는 단어 주위로 여러 단어가 떠다니는 그림으로, 어휘가 닿는 범위를 표현

모르는 단어는 틀린 문장을 만들지 않습니다. 아무 문장도 만들지 못합니다. 문법이 어긋난 말은 그래도 전달되지만 비어 있는 자리는 아무것도 전달하지 못해요. 실제로 이해도를 가장 잘 예측하는 건 문법 지식이 아니라 어휘량이라는 결과가 반복해서 나옵니다. 그리고 이 한계는 대부분 부딪히고도 모르고 지나갑니다.

비트겐슈타인이 실제로 쓴 문장

다들 인용하는 그 문장입니다.

The limits of my language mean the limits of my world.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를 뜻한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논리철학논고』 5.6.

아마 조금 다른 버전을 보셨을 겁니다. “The limits of my language are the limits of my universe”가 포스터와 공부 계정에 훨씬 널리 돌아다니는데, 원문이 아니에요. 독일어 원문은 “Die Grenzen meiner Sprache bedeuten die Grenzen meiner Welt”이고, bedeuten은 “뜻하다”, Welt는 “세계”입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주장이 달라집니다. “뜻하다”는 관계를 말하고 “이다”는 동일함을 못박으니까요. universe는 그가 고른 단어보다 한 뼘 더 거창하고요.

더 큰 오독은 이 문장이 뭘 하려던 문장이냐입니다. 『논리철학논고』는 논리학에 관한 책이고, 말할 수 있는 것의 경계를 다룹니다. 5.6은 사고의 구조를 따지는 논증 안에 놓인 명제지, 이번 달에 단어 몇 개를 외우라는 조언 안에 있는 문장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걸 언어 학습에 가져다 쓰는 건 용도 변경입니다. 꽤 괜찮은 용도 변경이긴 합니다. 다만 가져다 쓰고 있다는 자각은 필요해요. 문자 그대로 읽는 순간 이 주장이 깨지거든요. 뒤에서 다시 다룹니다.

보이지 않는 한계

어휘 구멍에는 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구멍처럼 느껴지지 않아요.

문법이 틀리면 알아차립니다. “I have went”라고 뱉는 순간 뭔가 걸립니다. 선생님이든, 상대의 정정이든, 반 박자 늦게 따라오는 내 귀든 신호가 옵니다.

없는 단어는 그런 신호를 주지 않습니다. 꺼내려다 망가진 걸 발견하는 게 아니라, 애초에 꺼내려는 시도 자체가 없어요. 문장이 조용히 구멍을 우회합니다. refund 대신 “물건 돌려주면 받는 돈”이라고 풀어 말하거나, 아예 그 얘기를 접고 할 수 있는 쉬운 말로 갈아탑니다. 안에서 보면 말을 한 겁니다. 뭔가를 잃었다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아요.

비트겐슈타인의 문장이 학습 맥락에서 값어치를 갖는 지점이 여기입니다. 언어가 현실을 만든다는 거창한 얘기가 아니라 훨씬 시시하고 쓸모 있는 사실이에요. 이름을 못 붙이는 건 아쉬워할 수도 없습니다. 내 어휘의 가장자리는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안 보이고, 그래서 사람들이 이 한계를 과소평가합니다.

문법이 문제일까, 어휘가 문제일까

직접 비교해 보면 빠릅니다.

“Yesterday I go store and buy three apple.” 시제도 복수도 관사도 다 틀렸습니다. 그런데 뜻은 전부 전달됐죠.

반대로 가 봅시다. “The tribunal remanded the case pending disclosure.” 문법은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그리고 저 내용어들을 모르면 이 문장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이 비대칭은 연구에서도 나타납니다. 제2언어 읽기 이해도를 예측하는 요인 중 어휘 지식은 늘 상위권이고, 문법 지식과 견주면 대체로 어휘 쪽이 더 큰 몫을 가져갑니다. 구조를 보면 당연하기도 해요. 문법은 생각들 사이의 관계를 담고, 어휘는 생각 자체를 담습니다. 관계는 맥락에서 추론할 여지가 있지만, 없는 내용은 어디서도 추론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문법이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일정 수준을 넘으면 부정확한 문법은 실제 의미를 갉아먹어요. “3년째 여기서 일하고 있다”와 “3년 동안 여기서 일했다”는 다른 사실입니다. 제목보다는 좁은 주장이고, 중요도가 아니라 순서에 관한 얘기입니다. 대부분의 학습자에게 대부분의 시기에 발목을 잡는 건 어휘고, 먼저 바닥나는 것도 어휘입니다.

어휘량이 이해도를 얼마나 바꾸나

어휘 연구는 보통 커버리지로 따집니다. 어떤 글에 나오는 단어 중 내가 이미 아는 단어의 비율이요. 이 문턱이 생각보다 날카롭습니다.

95퍼센트쯤이 맥락으로 짐작해 가며 그럭저럭 이해하는 하한선으로 봅니다. 98퍼센트쯤부터 사전 없이 읽는 게 편해지는데, 이 밀도면 모르는 단어가 쉰 개에 하나꼴이라 멈추지 않고 넘어갈 만하기 때문이에요.

여기까지는 해볼 만해 보입니다. 어족 수로 환산하기 전까지는요.

어휘량 (어족 기준)대략 커버되는 범위
1,000일상 구어의 큰 덩어리
2,000일반적인 글에 나오는 단어의 약 80퍼센트
3,000일상 대화 대부분, 단계별 읽기 교재의 기반
5,000글의 약 95퍼센트, 도움을 받으면 읽을 수 있는 수준
6,000–7,000구어의 약 98퍼센트
8,000–9,000소설과 신문의 약 98퍼센트, 사전 없이
15,000–20,000교육받은 원어민 성인의 범위

낱개 단어가 아니라 어족 기준입니다. govern, governs, governed, government, governing을 다 합쳐 하나로 셉니다.

이 표의 모양이 전부입니다. 앞쪽 2,000 어족이 엄청난 일을 해내고, 그래서 초급 때는 실력이 빨리 는다고 느낍니다. 그다음부터 곡선이 확 눕습니다. 80퍼센트에서 98퍼센트로 가는 데 어휘량은 네 배쯤 듭니다. 새로 넣는 단어일수록 덜 나오니까요. 단어당 비용은 오르고 눈에 보이는 성과는 줄어드는데, 하필 그 시점이 성장이 성장처럼 안 느껴지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중급에서 정체기가 오는 이유

방금 그 곡선이 언어 학습에서 가장 흔한 하소연을 설명합니다. 1년 동안 꾸준히 늘었는데 어느 순간 멈춘 것 같다는 말이요.

멈춘 게 아닙니다. 고빈도 단어는 사실상 저절로 들어오고 있었어요. 워낙 자주 나오니까 읽고 듣는 것만으로 공짜로 익혀집니다. 중빈도 구간은 그렇게 굴러가지 않습니다. 5,000에서 9,000 사이의 단어는 몇 달을 읽어야 한 번 나올 수도 있고, 그 빈도로는 자연 습득이 일을 해낼 수가 없습니다.

의도적인 단어 공부가 필요한 진짜 이유가 이거고, 범위는 생각보다 좁습니다. 앞쪽 2,000개는 굳이 외울 필요가 없어요. 노출이 알아서 가져다줍니다. 필요한 건 중빈도 구간을 다룰 방법입니다. 그쪽은 노출만으로는 납득할 만한 기간 안에 도달할 수 없으니까요. 숫자는 유창해지려면 단어 몇 개가 필요한지에서 따져봤습니다.

아는 단어와 쓸 수 있는 단어

첫 번째 구멍 안에 두 번째 구멍이 숨어 있습니다.

위의 숫자들은 전부 인지를 잽니다. 보면 뜻을 안다는 것. 필요한 순간에 꺼내 쓰는 것과는 다른 얘기고, 둘 사이 거리가 꽤 멉니다. 대부분의 학습자는 실제로 굴릴 수 있는 단어보다 몇 배 많은 단어를 알아봅니다.

비트겐슈타인의 문장이 아프게 들어오는 지점이 여기예요.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범위의 천장은 인지 어휘가 아닙니다. 실제 대화가 허락하는 0.5초 안에 끌어올 수 있는, 훨씬 작은 집합이죠. 지면에서는 바로 알아보지만 말할 때 안 떠오르는 단어는 실용적인 의미에서 내가 가진 단어가 아닙니다.

그래서 “단어를 더 외워라”는 반쪽짜리 지시입니다. 단어를 인지에서 산출로 옮기는 건 작동 방식이 다른 별개의 작업이고, 말투를 실제로 바꾸는 쪽은 이 작업이에요. 어떻게 굴러가는지는 아는 단어와 쓰는 단어에서 다뤘습니다.

이 문장이 과장인 지점

이제 포스터가 빼놓는 부분입니다.

문자 그대로 읽으면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다”는 강한 언어결정론입니다. 단어가 없으면 그 생각을 할 수 없다는 주장이요. 보통 사피어-워프 가설로 분류되는 이 생각은 검증을 잘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사람은 말로 옮기기 힘든 생각을 하고, 이름 없던 개념에 이름을 붙이고, 자기 언어가 표시하지 않는 구분도 이해합니다. 언어가 사고를 엄격히 결정한다면 그중 어느 것도 일어날 수 없어요.

살아남은 건 더 약하고 근거도 나은 주장입니다. 언어는 무엇을 쉽게 알아차리고, 머릿속에 붙들고, 빨리 말하느냐에 영향을 줍니다.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손에 닿는 것을 바꿉니다.

학습자에겐 이 약한 버전으로 충분하고, 무엇보다 사실이라는 장점이 있습니다. 영어를 쓸 때 내가 더 작은 사람이 되는 게 아니에요. 더 느린 사람, 더 뭉툭한 사람, 계속 구멍을 우회하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생각은 이미 거기 있습니다. 없는 건 거기로 곧장 가는 길이고요.

목표를 다시 세우기에 괜찮은 관점입니다. 더 큰 머리를 만드는 게 아니라 우회로를 지우는 일이고, 결국 영어로 생각하기와 같은 작업입니다.

그래서 뭘 해야 하나

어휘가 발목을 잡는 지점이라면, 답은 “더 많이 읽어라”보다 좁습니다.

  1. 빈도 순서를 지키세요. 희귀한 단어일수록 있어 보이고 덜 남습니다. 수익이 나는 구간은 중빈도예요. 내 어휘와 글 사이의 간격이 거기 있으니까요.
  2. 문장째로 익히세요. 단어와 뜻 하나를 짝지으면 사전 찾기가 훈련됩니다. 실제 문장 안에서, 같이 붙어 다니는 말들과 함께 만나야 대화에서 필요한 게 훈련돼요.
  3. 복습 간격을 두세요. 중빈도 단어는 자연 반복으로 유지되기엔 너무 드물게 나옵니다. 반복을 일정으로 만들어 줘야 합니다.
  4. 산출까지 밀어붙이세요. 인지는 값싸고 금방 천장에 닿습니다. 보고 끄덕이는 대신 힌트만 보고 직접 꺼내 보세요.
  5. 하루 분량은 끝낼 수 있게. 매일 채우는 작은 숫자가 3주 만에 손 놓는 큰 숫자를 이깁니다.

보캐비는 어디에 들어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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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단어에 발음기호와 실제 음성, 쉬운 영어 정의와 예문이 붙어 있어요. 번역 한 쌍이 아니라 쓸 수 있는 형태로 도착한다는 뜻입니다. 그다음은 FSRS 간격 반복이 오늘 어떤 단어를 다시 띄울지 정합니다. 야생에서 어쩌다 한 번 만나는 중빈도 단어가 그사이 조용히 흐려지는 걸 막아 주는 장치죠. 어떤 어휘가 있는지는 단어 라이브러리에서 둘러보세요.

비트겐슈타인은 영어 공부가 아니라 논리학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문장은 가져다 써도 됩니다. 대신 겸손한 쪽으로 읽으세요. 손이 닿는 단어가 내가 전달할 수 있는 생각이고, 그 집합은 알아보는 단어보다 훨씬 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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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문법보다 어휘가 더 중요한가요?
대부분의 학습자에게, 대부분의 시기에는 그렇습니다. 문법이 어긋난 말은 그래도 뜻이 넘어가요. 어제 나 가게 가서 사과 세 개 샀어, 라고 해도 다 알아듣습니다. 반면 단어가 비어 있으면 아무것도 넘어가지 않습니다. 제2언어 읽기 이해도를 예측하는 요인 중에서도 어휘 지식이 문법 지식보다 강하게 나오는 연구가 많고요. 물론 문법도 정확성에서는 필요합니다. 다만 순서의 문제라는 뜻이고, 먼저 바닥나는 쪽은 대개 어휘입니다.
영어 단어 몇 개를 알아야 하나요?
목표에 따라 다릅니다. 일상 대화 대부분은 어족 기준 3,000개 정도면 커버됩니다. 소설이나 신문을 사전 없이 읽으려면 대략 8,000에서 9,000개가 필요한데, 이 수준이 지면에 나오는 단어의 98퍼센트쯤이 이미 아는 단어인 상태예요. 교육받은 원어민 성인은 15,000에서 20,000개 사이로 봅니다. 낱개 단어가 아니라 어족 기준이라 govern, governs, governed, government를 하나로 셉니다.
쓰는 언어가 생각의 범위를 정말 제한하나요?
그 유명한 문장이 암시하는 강한 의미로는 아닙니다. 단어가 없으면 그 생각 자체를 못 한다는 주장은 보통 사피어-워프 가설과 함께 언급되는데, 검증을 잘 통과하지 못했어요. 사람은 말로 옮기기 힘든 생각을 하고, 없던 개념에 이름을 붙이고, 자기 언어가 구분하지 않는 차이도 이해합니다. 살아남은 건 더 약한 주장입니다. 가진 단어는 무엇을 쉽게 알아차리고 붙들고 빨리 말하느냐에 영향을 줍니다. 학습자에게 쓸모 있는 쪽은 이 약한 버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