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학습

한자어를 안다는 건 영어 단어 공부에서 자산입니다

Vocaby Team 6 분 분량
verbatim 단어와 발음기호가 들어간 보캐비 단어 카드

영어의 긴 학술 단어가 어려운 건 대개 복잡해서가 아니라 낯설어서입니다. 그런데 그 낯섦은 한국어 쓰는 사람에게 생각보다 얕습니다. 영어에도 일상어와 학술어가 갈리는 이중 구조가 있고, 그게 한국어의 고유어와 한자어 구조와 꽤 닮았기 때문입니다.

영어에도 두 개의 층이 있습니다

영어 어휘는 크게 두 갈래에서 왔습니다. 게르만계에서 온 짧고 일상적인 단어들, 그리고 라틴어와 프랑스어를 거쳐 들어온 길고 격식 있는 단어들입니다. 라틴계 비중은 글의 격이 올라갈수록 같이 올라갑니다. 대화보다 신문이, 신문보다 논문이나 법률 문서가 훨씬 높습니다.

중요한 건 이 두 층이 같은 뜻을 서로 다른 격으로 나눠 갖는다는 점입니다. ask와 inquire가 같은 일을 하고, help와 assist가 같은 일을 하고, end와 terminate가 같은 일을 합니다. 앞쪽은 대화에서 쓰고 뒤쪽은 서류에서 씁니다.

왜 이렇게 갈렸는지도 간단합니다. 1066년 노르만 정복 이후 몇백 년 동안 잉글랜드의 지배층과 행정·법률 언어가 프랑스어였습니다. 원래 쓰던 게르만계 어휘 위에 프랑스어와 라틴어 어휘가 얹혔고, 위에서 들어온 쪽이 공적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지금 영어에서 격식체가 대체로 라틴계인 건 그 시절의 흔적입니다.

한국어를 쓰는 사람에게 이 구조는 전혀 새롭지 않습니다. 우리도 똑같이 합니다. 그리고 우리 쪽 사정도 비슷합니다. 한자어가 공적인 자리를 차지한 것 역시 그 말이 오랫동안 문서와 학문의 언어였기 때문이지, 고유어가 부족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고유어와 한자어도 같은 일을 합니다

‘물어보다’와 ‘문의하다’가 같은 관계입니다. ‘돕다’와 ‘지원하다’, ‘끝내다’와 ‘종료하다’도 마찬가지고요. 앞은 말할 때, 뒤는 문서에 쓸 때입니다.

한국어 일상한국어 한자어영어 일상영어 라틴계
물어보다문의하다askinquire
돕다지원하다helpassist
끝내다종료하다endterminate
고치다수정하다fixmodify
보여주다제시하다showpresent
모으다수집하다gathercollect

표의 오른쪽 두 칸이 왼쪽 두 칸과 같은 방식으로 갈립니다. 그러니까 영어의 격식 체계를 처음부터 배우는 게 아니라, 이미 아는 감각을 옮겨 붙이는 일에 가깝습니다.

이걸 알고 나면 영어 글쓰기에서 격을 고르는 일이 훨씬 덜 막막해집니다. 한국어로 이 자리에 한자어를 쓸까 고유어를 쓸까 고민하는 그 감각을 그대로 쓰면 대체로 맞습니다.

접두사는 거의 그대로 대응합니다

구조가 닮은 건 격만이 아닙니다. 조각을 붙여 뜻을 바꾸는 방식도 닮았습니다.

  • 재- 는 re-입니다. 재구성이 reconstruct, 재활용이 recycle입니다
  • 불-, 비-, 무- 는 in-, un-, non-입니다. 불가능이 impossible, 비공식이 unofficial입니다
  • 과- 는 over-입니다. 과대평가가 overestimate입니다
  • 전-, 예- 는 pre-입니다. 예측이 predict, 전제가 premise입니다
  • 상호- 는 inter-입니다. 상호작용이 interaction입니다
  • 공-, 협- 은 co-, con-입니다. 공존이 coexist, 협력이 cooperation입니다
  • 이-, 전- 은 trans-입니다. 이식이 transplant, 전송이 transmission입니다
  • 하-, 부- 는 sub-입니다. 하위가 subordinate, 부제목이 subtitle입니다

in-이 뒤에 오는 글자에 따라 il-, ir-, im-으로 바뀌는 것도 한국어의 두음 현상과 비슷한 자리에 있습니다. illegal, irregular, impossible이 그 예입니다.

접두사와 접미사 전반은 영어 접두사·접미사에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목록이 아니라, 그 목록을 이미 한국어로 한 번 배웠다는 쪽입니다.

그래서 긴 단어가 오히려 쉬울 수 있습니다

영어를 배우는 사람들은 보통 긴 단어를 더 무서워합니다. 그런데 이 구조에서는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짧은 게르만계 단어는 조각으로 안 쪼개집니다. get, put, take는 뜯어봐야 아무것도 안 나오고, 전치사가 붙으면 뜻이 통째로 바뀌어서 외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긴 라틴계 단어는 대개 조립품입니다. inter + rupt, pre + dict, re + construct처럼요.

한자어를 읽어 온 사람에게는 이 조립이 익숙한 작업입니다. 처음 보는 한자어를 만나도 구성 요소로 뜻을 짐작해 본 경험이 이미 있으니까요. 그 습관을 영어 쪽으로 그대로 옮기면 됩니다.

하나 풀어 보겠습니다. incomprehensible은 열여섯 글자짜리라 처음 보면 부담스럽습니다. 그런데 in(아니다) + com(함께) + prehend(붙잡다) + ible(할 수 있는)으로 쪼개집니다. 함께 붙잡을 수 없는 것, 그러니까 이해할 수 없는 것이죠. 한국어로 옮기면 ‘불가해’인데 이쪽도 불(아니다) + 가(가능) + 해(풀다)로 똑같이 쪼개집니다. 두 언어가 같은 방식으로 같은 단어를 만들었습니다.

이런 대응이 우연히 하나 걸린 게 아니라, 두 언어가 모두 ‘조각을 붙여 추상어를 만드는’ 층을 갖고 있어서 생깁니다.

어근 쪽 이야기는 어근으로 영어 단어 외우기에서 더 자세히 다뤘습니다.

함정 하나: 대응이 항상 성립하지는 않습니다

이 방법이 잘 듣는 만큼, 어디서 깨지는지도 알아두셔야 합니다.

접두사가 늘 살아 있는 건 아닙니다. re-가 ‘다시’로 안 읽히는 단어가 꽤 있습니다. report는 다시 나르는 게 아니고, receive는 다시 받는 게 아니며, remain은 다시 남는 게 아닙니다. 조각이 굳어서 뜻이 통째로 하나가 된 경우입니다.

in-도 마찬가지입니다. invaluable은 가치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하다는 뜻이고, inflammable은 불에 안 타는 게 아니라 잘 타는 것입니다. 뜻을 정반대로 짐작하게 만드는 자리라 특히 조심할 만합니다.

한자어에도 같은 일이 있습니다. ‘자연’을 ‘스스로 그러함’으로 뜯어 읽는 사람은 없죠. 조어 방식은 남아 있지만 단어는 이미 하나로 굳었습니다.

그래서 이 기술은 짐작을 도와주는 도구지 확인을 대신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짐작한 다음에는 사전을 봐야 합니다.

함정 둘: 라틴계라고 다 어려운 말은 아닙니다

두 번째 함정은 격에 대한 것입니다.

라틴계 단어를 전부 격식체로 취급하면 말이 딱딱해집니다. use, place, part, form, city, river 같은 단어도 라틴 계열이지만 아무도 이걸 격식체로 느끼지 않습니다. 너무 오래 쓰여서 일상어가 된 것들이죠.

한국어로 치면 ‘학교’나 ‘시간’을 한자어라고 격식체로 분류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기원과 현재의 격은 다른 문제입니다.

실전 기준은 단순합니다. 그 단어를 말할 때도 쓰는지 보세요. 쓴다면 일상어고, 서류에서만 본다면 격식체입니다.

어떻게 쓰면 되나

정리하면 순서는 이렇습니다.

  1. 긴 단어를 만나면 먼저 쪼갭니다. 접두사, 어근, 접미사 순으로요
  2. 아는 한자어 중에 같은 구조가 있는지 봅니다. 재-, 불-, 과- 같은 조각이 대응할 때가 많습니다
  3. 짐작한 뜻을 사전으로 확인합니다. 이 단계를 건너뛰면 report 같은 데서 틀립니다
  4. 격을 판단합니다. 말할 때도 쓰는 단어인지, 서류용인지
  5. 접두사는 열 개 남짓만 외웁니다. 그 이상은 수익이 빠르게 줄어듭니다

3번이 실제로는 제일 자주 생략됩니다. 조립해서 나온 뜻이 그럴듯하면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잘 안 들거든요. 저도 이쪽에서 몇 번 틀렸고, 틀릴 때는 대체로 그럴듯해서 틀렸습니다.

어디서 특히 잘 듣나

이 방식이 값을 하는 자리는 정해져 있습니다. 학술 어휘와 시험 어휘입니다.

토플이나 아이엘츠 리딩에 나오는 단어, 논문이나 신문 사설에 나오는 단어는 라틴계 비중이 확 올라갑니다. 조립품 비율이 높다는 뜻이고, 그러니 쪼개기가 잘 통합니다.

반대로 회화 교재나 미드 자막에서는 덜 통합니다. 거기 나오는 건 짧은 게르만계 동사와 구동사가 대부분이라 쪼갤 게 없습니다. get through, put up with 같은 것들이죠. 같은 노력을 들여도 얻는 게 다릅니다.

그래서 지금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에 따라 이 기술의 우선순위가 달라집니다. 시험을 앞두고 계시다면 꽤 높고, 회화가 목표라면 뒤로 미뤄도 됩니다.

이 방법이 못 해 주는 것

마지막으로 한계를 분명히 해두는 게 맞겠습니다.

구조를 알면 뜻은 짐작이 되지만 소리는 짐작이 안 됩니다. 강세가 어디 붙는지는 구성 요소로 계산되지 않고, 오히려 품사가 바뀌면 강세가 옮겨 가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이 방식으로 익힌 단어는 특히 글로만 만난 상태가 되기 쉽습니다. 뜻은 아는데 들으면 못 알아듣고, 내 입으로는 한 번도 내본 적 없는 상태요.

보캐비가 29,000개가 넘는 단어에 발음기호와 원어민 음성을 같이 붙여 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뜻을 구조로 풀었다면 소리는 따로 한 번 확인해 두시는 게 좋습니다. 단어 페이지는 단어 목록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한자어를 읽어 왔다는 건 영어 공부에서 손해가 아니라 이미 갖고 있는 도구입니다. 다만 그 도구가 뜻까지만 데려다준다는 것도 같이 알고 쓰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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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한자를 못 읽어도 이 방법이 통하나요?
네. 한자 자체를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필요한 건 '재-', '불-', '과-' 같은 조각이 뜻을 어떻게 바꾸는지에 대한 감각이고, 그건 한자를 못 읽어도 한국어를 쓰면서 이미 갖게 됩니다.
그럼 어원을 다 외워야 하나요?
아닙니다. 접두사 열 개 남짓과 자주 나오는 어근 스무 개 정도면 체감이 크게 달라집니다. 그 이상은 수익이 빠르게 줄어들고, 어원 공부가 어휘 공부를 대체하지도 못합니다.
이 방법으로 발음도 해결되나요?
안 됩니다. 구조를 알면 뜻은 짐작할 수 있지만 강세 위치는 짐작이 안 됩니다. 오히려 이 방식으로 익힌 단어일수록 글로만 만난 상태가 되기 쉬워서, 소리는 따로 챙기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