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외운 단어는 아예 모르는 단어보다 찾기 어렵습니다. 모르는 쪽은 필요한 순간에 스스로 티를 내지만 틀린 뜻은 그러지 않습니다. 쓸모 있는 반전은 그다음에 있습니다. 확신을 갖고 틀렸던 것일수록 교정이 잘 붙습니다. 단, 나중에 한 번 더 테스트가 있어야 합니다.
몇 년째 잘못 쓰고 있던 단어
누구나 하나쯤 있습니다. 제 경우는 nonplussed였습니다. 십 년 가까이 ‘동요하지 않는’이라는 뜻으로 썼습니다. 소리가 그렇게 들리니까요. 실제 뜻은 반대에 가깝습니다.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상태입니다. 아무도 고쳐 주지 않았는데, 제가 그 단어를 넣은 문장들이 대개 그럭저럭 말이 됐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점이 문제의 전부입니다. 틀린 뜻은 누가 멈춰 세울 만큼 크게 어긋나지 않아서 살아남습니다.
이런 부류가 따로 한 무리 있고, 작동 방식이 같습니다. 단어가 다른 단어를 닮았고, 그 닮음이 사전보다 먼저 뜻을 공급해 버립니다.
| 단어 | 이렇게 들립니다 | 실제 뜻 |
|---|---|---|
| noisome | 시끄러운(noisy) | 불쾌한, 주로 악취가 나는 |
| restive | 편안한(restful) | 가만있지 못하는, 다루기 힘든 |
| travesty | 비극(tragedy) | 우스꽝스럽게 일그러뜨린 모방 |
| inflammable | 불에 안 타는 | 불에 잘 타는(flammable과 같은 뜻) |
| enervated | 활력이 넘치는 | 기운이 빠진 |
inflammable은 눈총 이상의 결과가 따르는 유일한 경우입니다. 안전 표기에서 이 단어를 거의 버리고 flammable로 옮겨 간 이유가 그것입니다. 가장 직관적인 해석이 실제 뜻의 정반대인 단어는 설계 결함에 가깝고, 업계는 그 단어를 가르치는 대신 치우는 쪽을 골랐습니다.
나머지는 조용합니다. noisome을 시끄러운 방에 갖다 쓰면서 오래 지낼 수 있습니다. 시끄러운 방은 대체로 불쾌하기도 하고, 어느 쪽 불쾌함을 말한 건지 따져 묻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모르는 것과 잘못 아는 것은 다릅니다
이 둘은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전혀 다르게 굴러갑니다.
모르는 건 스스로 신고합니다. 단어를 찾는데 아무것도 안 나오면 그 자리에서 모른다는 걸 압니다. 신호가 즉시, 그것도 정확히 필요한 순간에 옵니다.
틀린 뜻은 그런 신호를 내지 않습니다. 손을 뻗으면 뭔가 잡히고, 그 감각이 아는 것과 구별되지 않습니다. 확신에 찬 옳은 인출과 확신에 찬 틀린 인출을 가려 주는 내부 경보 같은 건 없습니다. 그래서 진짜 빈칸은 며칠이면 메워지는데 이쪽은 몇 년을 버팁니다.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틀린 쪽이 매끄럽게 떠오르기 때문에, 확신 없는 단어보다 오히려 더 자주 쓰입니다. 애매하면 사람은 돌려 말하거나 안전한 유의어를 고릅니다. 확신하면 그냥 씁니다. 결국 잘못 알고 있는 단어일수록 더 거리낌 없이 꺼내 쓰게 되는 배치입니다.
그러니 어려운 쪽은 고치기가 아닙니다. 알아차리기이고, 그 알아차림은 바깥에서 와야 합니다. 되묻는 사람이든, 어쩌다 열어 본 사전이든, 내 해석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문장이든.
확신했던 오답일수록 잘 고쳐집니다
직관과 반대되는 결과가 여기 있습니다.
굳게 믿던 오해가 가장 안 바뀌고 어렴풋한 쪽이 쉽게 바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류 교정 연구는 사실 지식에 대해 반대 결과를 내놨습니다. 분명한 피드백이 주어지면, 확신을 갖고 저지른 오답이 어렴풋하게 저지른 오답보다 더 잘 교정됩니다. 과교정 효과라고 부르고, Butterfield와 Metcalfe의 연구에서 나왔으며, 자료와 연령대를 바꿔 가며 아이들을 포함해 반복 확인됐습니다.
어휘 공부에는 이게 반가운 소식입니다. 가장 자신 있는 단어, 우겨 볼 만한 단어일수록 사전을 펴 보이는 순간 실제로 움직입니다.
놀람이 일을 합니다
설명은 기억의 강도가 아니라 주의에 있습니다.
확신한 상태에서 반대되는 피드백을 만나면 예상과 결과 사이에 틈이 생깁니다. 그 어긋남이 놀랍고, 놀람은 주의를 끌어당기고, 반쯤 긴가민가하던 사실을 볼 때보다 깊게 처리됩니다. 확신 없는 오답은 어깨를 으쓱하고 지나갑니다. 확신했던 오답은 작게 철렁하고, 그 철렁임이 부호화를 대신해 줍니다.
저는 이 부분이 기억 연구치고 드물게 위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남들 앞에서 틀린 게 부끄러웠던 그 감각이 사교적 손해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사실 작동 기제의 대부분이라는 뜻이니까요.
거의 모두가 빠뜨리는 조건
이제 요약본에서 잘려 나가는 부분이고, 이 이야기가 실제로 도움이 되느냐를 가르는 부분입니다.
과교정의 이점은 교정 뒤에 테스트가 따라올 때 시간이 지나도 유지됩니다. 사이에 아무 테스트가 없으면 확신이 셌던 오답이 되돌아온다는 관찰이 있습니다. 교정이 옛 버전을 영구히 덮어쓰는 게 아니라 경쟁할 뿐이고, 나중에 어느 쪽이 이길지는 그 사이에 옳은 쪽을 꺼내 본 적이 있는지가 정합니다.
이게 중요한 건 사람들이 실제로 하는 행동 쪽을 보면 드러납니다. 틀렸다는 걸 알고, 철렁하고, 맞는 뜻풀이를 읽고, 탭을 닫습니다. 이 순서는 해결처럼 느껴지지만 인출이 하나도 없습니다. 답을 읽었을 뿐 만들어 내지는 않았습니다.
정확히 적어 두면, 연구의 두 결과는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둘 다 쓸모가 있습니다. 과교정의 이점은 일주일 지연에도 살아남습니다. 실험실 안에서만 반짝하는 현상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다만 중간에 테스트가 없었을 때는 확신형 오답이 돌아오는 게 관찰됐고, 테스트가 있었을 때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교정에 테스트를 더하면 남고, 교정만 있으면 흐려집니다.
해법은 더 읽는 게 아닙니다. 며칠 뒤에 의도적으로 한 번 꺼내 보는 것이고, 이게 능동 인출을 고집스러운 단어 하나에 적용한 형태입니다.
잘못 외운 단어를 찾아내는 법
이 단어들은 손을 들지 않으니 찾아 나서야 합니다. 꽤 잘 듣는 신호들입니다.
| 신호 | 대개 이런 뜻입니다 |
|---|---|
| 읽어서만 알고 들어 본 적은 없다 | 격식이나 함의를 잘못 알고 있을 수 있습니다 |
| 인상적인 한 장면에서 배웠다 | 단어의 뜻이 아니라 그 장면의 뜻을 가져왔을 수 있습니다 |
| 이미 아는 다른 단어와 소리가 닮았다 | 소리 간섭, 위의 nonplussed 문제입니다 |
| 남이 나처럼 쓰는 걸 본 기억이 없다 | 이 목록에서 가장 강한 신호입니다 |
| 한국어 뜻 한 단어로 외웠다 | 한 단어 뜻풀이는 조건과 격식을 늘 떨어뜨립니다 |
마지막 두 줄은 바로 확인해 볼 만합니다. 특히 한국어 뜻 한 단어로 외운 경우가 많은데, 그 한 단어가 원래 뜻의 어느 부분을 잘라 냈는지는 예문을 봐야만 드러납니다.
발견했을 때 할 일
실제로 남는 순서입니다.
- 내가 알던 뜻을 먼저 말로 꺼내세요. 소리 내어도 좋고 적어도 좋습니다. 틀린 버전을 명시하는 행위가 이 효과의 전제인 어긋남을 만듭니다
- 예문까지 포함해서 진짜 사전 항목을 읽으세요. 뜻풀이 줄이 빠뜨린 격식은 예문이 들고 있습니다
- 그 단어로 내 문장을 하나 써 보세요. 알아보기 말고 만들어 내기입니다
- 며칠 뒤에 다시 테스트하세요. 생략하면 안 되는 단계입니다. 이게 없으면 옛 버전이 돌아올 수 있습니다
- 한 번은 재발할 거라고 예상하세요. 옛 뜻을 쓰려다 스스로 붙잡는 건 교정이 실패한 게 아니라 작동하는 중이라는 신호입니다
4번이 늘 빠지고, 빠지는 순간 진짜 교정이 임시 교정으로 바뀝니다.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뜻풀이를 가리고 소리 내어 말해 보는 것으로 충분하고, 마침 쓰고 있던 글에 그 단어를 한 번 넣어 보는 것도 됩니다. 다만 뜻풀이를 다시 읽는 건 안 됩니다. 뇌가 대신 제안할 행동이 정확히 그것인데, 쉽고 같은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가 안 통하는 자리
정직하게 한계 둘을 적어 둡니다.
여기 인용한 연구는 대체로 사실 지식과 일반 상식 문항을 다뤘지 제2언어 어휘를 직접 다룬 게 아닙니다. 그러니 저는 유추로 확장해서 쓰고 있습니다. 놀람이 피드백에 대한 주의를 끌어올린다는 기제가 언어에서만 멈출 이유는 딱히 없어 보이지만, 확장이라는 사실은 감춰 두는 것보다 밝히는 편이 낫습니다.
또 하나는 더 큽니다. 위의 표를 거기서 끊은 이유이기도 한데, 어떤 단어는 틀린 게 아니라 논쟁 중입니다.
- nonplussed: 당황한. 다만 ‘동요하지 않는’이라는 새 뜻이 사전에 실릴 만큼 퍼졌습니다
- peruse: 원래는 꼼꼼히 읽다. 지금은 훑어보다로 아주 흔하게 쓰입니다
- enormity: 원래는 극악함. 지금은 거대함으로 자주 쓰입니다
- fulsome: 원래는 지나쳐서 느끼한. 지금은 그냥 풍성한 쪽으로 자주 씁니다
- disinterested: 사심 없는. 그런데 ‘관심 없는’으로 끊임없이 쓰입니다
각각 지키려는 사람이 있는 옛 뜻과 실제로 많이 쓰이는 새 뜻이 함께 있습니다. 새 쪽으로 쓴다고 오류를 저지르는 게 아니라 한쪽 편을 드는 것이고, 편을 들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게 정직한 태도입니다. 아무도 안 지키는 규칙으로 자신을 교정하는 것도 나름의 실수라서, 문법적으로는 방어되는데 어딘가 이상한 글이 나옵니다.
실용적인 구분선은 이렇습니다. 후보 두 뜻이 서로 무관하면 잘못 외운 쪽일 가능성이 큽니다. 두 뜻이 한 흐름의 앞뒤 단계면 용법 논쟁에 발을 들인 겁니다.
앱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소프트웨어는 당신이 어떤 단어를 잘못 외웠는지 미리 알려 줄 수 없습니다. 당신 머릿속 버전을 꺼내 보기 전까지는 접근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할 수 있는 건 4번입니다. 간격 반복 스케줄러는 시간이 지난 뒤 단어를 다시 데려오려고 존재하고, 그게 바로 교정이 흐려지지 않게 막아 주는 재시험입니다. 보캐비의 FSRS 스케줄러는 카드가 몇 번이나 무너졌는지도 함께 셉니다. 그래서 계속 틀리는 단어가 ‘이건 좀 애먹는다’는 막연한 느낌이 아니라 숫자로 떠오릅니다. 잘못 외운 단어가 마침내 보이는 지점이 대개 거기입니다. 앱이 내가 알던 뜻을 알아서가 아니라, 그 카드가 자꾸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29,000개가 넘는 단어 목록 전 항목에 붙은 뜻과 발음기호와 음성은, 찾아 나선 날 맞는 버전을 쉽게 만나게 해 주는 장치일 뿐입니다. 그게 남게 만드는 건 간격 반복이 돌아오는 시점을 정하는 방식 쪽입니다.
App Store에서 Vocaby 받기자주 묻는 질문
- 잘못 외운 단어를 고치는 게 새로 외우는 것보다 어렵나요?
- 고치기가 어려운 게 아니라 알아차리기가 어렵습니다. 모르는 단어는 필요한 순간에 바로 티가 나지만, 잘못 아는 단어는 아는 것과 똑같은 느낌으로 떠올라서 손을 들지 않습니다. 일단 붙잡고 나면 교정은 꽤 잘 붙고, 오히려 확신이 셌던 쪽이 더 잘 붙습니다.
- 확신이 셌는데 왜 더 잘 고쳐지나요?
- 놀라기 때문입니다. 내가 맞다고 확신한 상태에서 반대되는 정보를 만나면 그 어긋남이 주의를 끌어당기고, 그만큼 교정이 깊게 남습니다. 이걸 과교정 효과라고 부르고, 나이대와 자료를 바꿔 가며 반복 확인된 결과입니다.
- 그러면 한 번 확인하면 끝인가요?
- 아닙니다. 여기가 빠지는 부분입니다. 이 효과가 시간이 지나도 유지되는 건 교정 뒤에 다시 테스트가 있었을 때입니다. 테스트 없이 두면 확신이 셌던 오답이 되돌아온다는 관찰이 있습니다. 사전을 한 번 찾아보는 건 마무리처럼 느껴지지만 마무리가 아닙니다.
이어서 읽기
영어 단어, 몇 번 봐야 외워질까
연구가 말하는 숫자는 여덟에서 열 번쯤입니다. 다만 이 숫자가 가리는 게 있어요. '외웠다'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답이 완전히 달라지고, 알아보는 건 싸지만 떠올리는 건 훨씬 비쌉니다.
유독 안 외워지는 단어가 있는 이유
한 단어만 계속 안 붙으면 방법이 틀렸거나 머리가 나쁜 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대개는 그 단어가 옆 단어들보다 비싼 것뿐이고, 얼마나 비싼지는 외우기 전에 대충 계산됩니다.
동의어를 한꺼번에 외우면 안 되는 이유
'행복하다'는 뜻의 단어 열 개를 한 페이지에 모아 둔 단어장, 다들 써 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40년 가까이 쌓인 연구는 그 배열이 하필 가장 안 외워지는 방식이라고 말합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대신 어떻게 하면 되는지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