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다른 언어가 단어 하나로 해결하는 자리에 보통 세 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짧은 고대영어 단어, 1066년 이후 들어온 프랑스어 단어, 그리고 몇 세기 뒤 학자들이 라틴어에서 직접 가져온 단어. ask, question, interrogate가 그렇습니다. 이 셋은 공손함의 순서가 아닙니다. 뜻의 폭이 다르고, 거리가 다르고, 그 말을 쓰는 사람이 다릅니다.
세 개의 층은 어디서 왔나
맨 아래가 가장 오래됐습니다. 고대영어는 하루를 보내는 데 없으면 곤란한 단어들을 남겼습니다. house, food, drink, eat, sleep, hand, work, good, bad, ask 같은 것들이죠. 짧고, 대개 한 음절이고, 음절이 늘어나도 첫 음절에 강세가 옵니다.
가운데 층은 1066년 노르만 정복과 함께 들어왔습니다. 프랑스어가 잉글랜드 궁정과 법정과 행정의 언어가 됐고 그 자리를 300년쯤 지켰습니다. 법정에서 영어로 변론하라는 법(Statute of Pleading)이 나온 게 1362년입니다. 300년이면 외국어라는 느낌이 사라지고도 남는 시간입니다. 지금 이 층의 단어들은 영어에서 가장 평범한 축에 듭니다.
맨 위 층은 훨씬 나중에, 그것도 의도적으로 들어왔습니다. 르네상스 시기 영국 문인들이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직접 가서 단어를 수천 개씩 끌어왔습니다. 영어로는 어딘가 투박하게 표현된다고 본 개념에 이름을 붙이려는 거였죠. 당대 사람들은 이걸 잉크통 단어(inkhorn term)라고 불렀는데, 칭찬이 아니었습니다. 그중 일부는 완전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education과 encyclopedia가 그렇습니다. 나머지는 한 세대도 못 버티고 비웃음 속에 사라졌습니다. 이미 정착한 impede의 반대말로 제안됐던 expede 같은 단어가 그랬습니다.
표로 넘어가기 전에 솔직하게 짚을 게 하나 있습니다. 프랑스어 층과 라틴어 층의 경계는 생각보다 흐릿합니다. 프랑스어 자체가 라틴어의 후손이고, 영어는 양쪽에서 부지런히 빌려왔으며 같은 단어를 두 번 빌려온 경우도 있습니다. 세 층을 칸막이가 아니라 세 번의 도착으로 이해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소는 cow, 고기는 beef
가운데 층이 남긴 가장 선명한 지문은 식탁 위에 있습니다.
동물은 고대영어 이름을 지키고 고기는 프랑스어 이름을 씁니다. cow와 beef. pig와 pork. sheep과 mutton. calf와 veal. deer와 venison. 살아 있는 쪽은 게르만어고 접시에 올라간 쪽은 노르만어입니다.
흔히 붙는 설명은 이렇습니다. 색슨족 농민이 기르고 노르만 영주가 먹었으니 들판에는 영어가, 식탁에는 프랑스어가 남았다는 거죠. 이야기로는 훌륭하고 패턴 자체도 실재합니다. 다만 실제 증거보다 깔끔합니다. 고기 쪽 단어 대부분은 13~14세기가 돼서야 문헌에 나타나는데, 정복으로부터 100년도 더 지난 시점입니다. 침공과 함께 갈라진 게 아니라 서서히 굳어진 셈이죠. 가져갈 건 방향입니다. 손으로 만지는 일상적인 단어가 대체로 더 오래됐고, 손질해서 내놓는 쪽 단어가 대체로 프랑스어를 거쳐 들어왔습니다. deer와 venison은 지금도 그 선의 양쪽에 서 있고, 800년 동안 아무도 왜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어느 층인지 알아보는 법
어원을 몰라도 단어의 자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신호가 있고, 문장 쓰다 말고 써먹을 만큼 잘 맞습니다.
- 길이. 한 음절이면 거의 항상 가장 오래된 층입니다. 네 음절이면 거의 절대 아닙니다.
- 어미. -ate, -ion, -ity, -ous, -ance, -ent는 라틴계 표식입니다. 고대영어 쪽 어미는 더 수수합니다. -ness, -ship, -hood, -ly, -th 같은 것들이죠.
- 강세. 게르만계 단어는 첫 음절에 강세가 옵니다. 라틴계 동사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assist는 /əˈsɪst/, interrogate는 /ɪnˈterəɡeɪt/입니다.
- 맨몸 대체어 시험. 비슷한 뜻의 짧고 투박한 단어가 떠오른다면, 지금 들고 있는 쪽이 빌려온 단어입니다. commence 뒤에는 begin이 서 있습니다. begin 뒤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 자음 덩어리. strong, bind, thick처럼 자음이 뭉쳐 시작하고 툭 끊기는 단어는 대개 토박이말입니다.
어느 하나도 예외 없는 법칙은 아닙니다. 다만 다섯을 함께 쓰면 대부분 맞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각 칸이 실제로 알려주는 것
개념 하나에 한 줄씩입니다.
| 고대영어 | 프랑스어 | 라틴어 |
|---|---|---|
| ask | question | interrogate |
| kingly | royal | regal |
| rise | mount | ascend |
| help | aid | assist |
| begin | commence | initiate |
| end | finish | conclude |
| fire | flame | conflagration |
| holy | sacred | consecrated |
| goodness | virtue | probity |
세로로 읽으면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가로로 읽으면 격식만 달라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갈수록 뜻이 좁아집니다. ask는 부탁부터 경찰 조사까지 다 덮습니다. interrogate가 덮는 상황은 딱 하나고, 그것도 적대적인 상황입니다. 거리도 멀어집니다. conflagration은 옆에 서서 보는 불이 아니라 기사로 전하는 불입니다. 말하는 사람도 바뀝니다. 저녁 자리에서 probity를 입 밖에 내는 사람은 없지만, 판결문을 쓰는 판사는 씁니다.
그래서 이 줄은 공손함의 눈금이 아닙니다. ask 자리에 interrogate를 넣는다고 유식해 보이지 않습니다. 전문어를 고급어로 착각한 사람처럼 들립니다. 원어민은 이걸 바로 알아채고, 아무도 노리지 않았을 인상이 남습니다.
가운데 칸이 기본값입니다, 격식체가 아니라
여기가 대부분의 설명이 거꾸로 알려주는 지점이고, 학습자가 치르는 대가가 큰 지점입니다.
프랑스어 층은 격식체가 아닙니다. 그냥 보통 현대 영어입니다. question, city, place, river, table, chair, change, cover, use, very, air, money, people, second, large. 전부 프랑스어 계열입니다. 어느 하나 고상한 구석이 없고, 이 층으로 지은 문장은 평범한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여기서 생기는 오해는 방향이 정해져 있습니다. 영어에 쉬운 말과 어려운 말이 있다는 설명을 읽고, 쉬운 말은 곧 가벼운 말이라고 판단하고, 진지해 보이려고 위쪽으로 손을 뻗습니다. 그 결과가 세 번째 칸으로만 지은 말입니다. people 대신 individuals, buy 대신 purchase, use 대신 utilise, start 대신 commence. 단어는 하나하나 다 맞습니다. 전체적으로는 뻣뻣하고, 원어민 귀에는 세련됨이 아니라 힘이 들어간 것으로 들립니다.
시험 준비가 이걸 더 키웁니다. 채점 기준이 어휘 다양성에 점수를 주고, 다양해 보이는 가장 빠른 방법은 제일 긴 단어를 집는 거니까요. 라이팅에서 점수가 되던 습관이 그대로 회화까지 따라오는데, 회화에는 자리가 없습니다.
실전 요약은 짧습니다. 앞의 두 칸으로 짓고, 세 번째 칸은 그 단어여야만 하는 뜻이 있을 때만 꺼내세요.
영한사전은 세 개를 하나로 눌러버립니다
이 표의 아무 줄이나 영한사전에서 찾아보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입니다.
ask도 question도 interrogate도 결국 비슷한 한국어 몇 개를 맴도는 뜻풀이를 내놓습니다. 영어가 지고 있던 3분할이 건너오는 도중에 사라지는 겁니다. 한국어가 그 구분을 따라 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남는 건 서로 바꿔 써도 될 것처럼 보이는 세 개의 항목이고, 실제로는 바꿔 쓸 수 없습니다.
재미있는 건 한국어에도 층이 있고 한국어 화자는 그 사이를 의식하지 않고 오간다는 점입니다. 나이와 연세가 같은 것을 가리킵니다. 집과 가옥, 이와 치아, 생각과 사고도 마찬가지죠. 고유어가 아래에 있고 한자어가 위에 있고, 둘 중 무엇을 고를지는 배우지 않아도 되는 반사에 가깝습니다. 영어도 빌려온 곳만 다를 뿐 똑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구조는 이미 아는 것이고 어휘만 새것입니다. 이 대응을 더 밀고 나가면 긴 학술 단어가 오히려 쉬워지는데, 한자어와 라틴계 영단어에서 따로 다뤘습니다.
그래서 이 지점은 뜻풀이가 실패하고 정의가 구해주는 자리입니다. 한 단어짜리 대역어는 그 단어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려줍니다. 예문과 함께 붙은 영영 정의는 그 단어가 어느 상황에 속하는지 알려줍니다.
위로 올라가면 강세가 움직입니다
층마다 소리가 다릅니다. 읽는 것보다 듣는 편이 빠릅니다.
ask는 영국식 /ɑːsk/, 미국식 /æsk/입니다. 한 음절이니 정할 게 없습니다. question은 /ˈkwestʃən/, 두 음절에 첫 음절 강세로 영어가 보통 강세를 두는 자리입니다. interrogate는 /ɪnˈterəɡeɪt/, 네 음절에 강세가 두 번째로 갑니다. 영어가 스스로 만들어낸 패턴이 아니라 단어와 함께 딸려 들어온 패턴이죠.
다른 줄도 같습니다. help는 /help/, aid는 /eɪd/, assist는 /əˈsɪst/. kingly는 /ˈkɪŋli/, royal은 /ˈrɔɪəl/, regal은 /ˈriːɡəl/입니다.
학습자에게는 이게 보기보다 중요합니다. 강세가 틀리면 맞는 단어도 순식간에 안 들리는 소리가 되는데, 하필 라틴계 층이 강세를 예측하기 어려운 구간입니다. 긴 단어를 눈으로만 읽고 강세를 짐작하는 건 동전 던지기입니다. 한 번 들으면 짐작할 일이 없어집니다. 보캐비의 모든 단어에 IPA와 발음 오디오가 붙어 있는 이유가 이것이고, 눈으로만 봤던 단어를 남 앞에서 말하기 전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 줄을 뒤섞지 않고 익히는 법
가장 끌리는 방법은 뜻이 같으니 세 개를 한 줄로 묶어서 외우는 겁니다. 그리고 그게 나중에 셋을 구분 못 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많이 겹치는 단어끼리는 기억 안에서 서로를 방해하고, 한자리에서 몰아서 외우면 자신 있게 틀린 쪽을 꺼내게 됩니다. 근거는 동의어를 묶어서 외우면 생기는 일에 정리해 뒀습니다.
순서를 바꾸는 것만으로 달라집니다.
- 실제로 말할 칸부터 익힙니다. 고대영어와 프랑스어 계열 단어를 하나씩, 문장 안에서.
- 라틴어 단어는 나중에, 따로 붙입니다. 영어 동의어가 아니라 그 단어가 맞는 상황 하나에 걸어 두세요.
- 정의가 아니라 상황을 저장합니다. interrogate는 ask 옆이 아니라 police, suspect, hours 옆에 둡니다.
- 오디오를 켜고 한 번 소리 내어 말합니다. 강세가 틀렸다면 아직 외운 게 아닙니다.
나머지는 간격이 해 줍니다. 핵심은 두 단어가 서로 경쟁하지 않을 만큼 멀리 떨어뜨려 만나는 거니까요. 보캐비는 FSRS로 복습 간격을 잡아서, 겨우 아는 단어는 금방 다시 오고 확실히 아는 단어는 뒤로 밀립니다. 비슷한 말끼리는 이 방식이 특히 잘 듣습니다. 문제가 단어를 잊는 게 아니라 옆 단어와 섞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표의 한 줄을 공부하기 전에 훑어보고 싶다면 단어 탐색기에 29,000개가 넘는 단어의 정의와 발음이 있습니다.
영어는 빌려온 곳들 사이에서 하나를 고른 적이 없습니다. 색슨어 단어를 두고, 노르만어 단어를 받고, 다시 라틴어까지 가지러 갔다가, 셋을 같은 문장 안에 세워 두고 고르라고 내밉니다. 그래서 이 언어는 정확하게 쓰기가 어렵고, 지루하게 쓰기는 훨씬 더 어렵습니다.
앱스토어에서 보캐비로 영어 단어 학습하기자주 묻는 질문
- 영어는 왜 이렇게 동의어가 많나요?
- 빌려오기만 하고 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고대영어가 기본 어휘를 깔았고, 1066년 이후 프랑스어가 300년간 자리를 잡았고, 르네상스 시기 학자들이 라틴어와 그리스어에서 직접 단어를 가져왔습니다. 이미 표현할 수 있는 개념에 새 단어가 계속 얹혔으니 옛 단어가 그대로 살아남은 겁니다.
- 라틴어 계열 단어가 항상 더 격식 있는 표현인가요?
- 대체로 그렇지만 격식만 달라지는 게 아닙니다. ask에서 interrogate로 갈수록 뜻이 좁아지고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의 거리가 멀어집니다. interrogate는 ask의 공손한 버전이 아니라 아예 다른 행위를 가리킵니다. 평범한 질문에 쓰면 유식해 보이는 게 아니라 어색해집니다.
- 회화에서는 어느 층을 쓰는 게 좋을까요?
- 앞의 두 층이면 충분합니다. 고대영어 기본 어휘와 프랑스어 계열 단어가 자연스러운 회화의 거의 전부를 덮고, 특히 프랑스어 계열은 격식체가 아니라 그냥 보통 영어입니다. 라틴어 계열은 학술 글쓰기나 전문 분야처럼 그 단어가 실제로 필요한 자리에 아껴 두세요.
이어서 읽기
동의어를 한꺼번에 외우면 안 되는 이유
'행복하다'는 뜻의 단어 열 개를 한 페이지에 모아 둔 단어장, 다들 써 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40년 가까이 쌓인 연구는 그 배열이 하필 가장 안 외워지는 방식이라고 말합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대신 어떻게 하면 되는지 정리했습니다.
가산·불가산은 문법이 아니라 단어 정보입니다
information은 왜 informations가 안 되는지 규칙으로 찾으려 하면 계속 예외에 걸립니다. 셀 수 있는지 없는지는 단어마다 사전에 적혀 있는 정보라서, 문법 시간이 아니라 단어를 외울 때 같이 챙겨야 하는 것입니다.
소금과 후추, 순서를 바꾸면 어색한 이유
영어에는 순서가 굳어버린 단어 짝이 수백 개 있습니다. salt and pepper, back and forth, safe and sound. 순서를 뒤집어도 문법은 멀쩡합니다. 그래서 아무도 고쳐주지 않습니다.